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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eep is your love사랑에관하여 2024. 6. 21. 18:25

초고를 고민하던 어느 날, 샤워를 하던 도중 번뜩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사랑을 배웠을까? 나는 어떤 언어로 사랑을 할까?라는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어요.
본인의 언어로 사랑을 말해본 적이 있으세요?
<모방하는 사랑>
아마 여느 동물이나 다름없이 첫사랑을 배우게 되는 건 주 양육자의 사랑 언어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우리는 주 양육자의 언어를 모방하여 사랑을 시작합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 하더니 사랑의 시작도 모방이군요?)그리고 우린 아마 이때 시작한 사랑의 언어를 평생 벗어던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의식하지 않으면요)
‘나 너 좋아하냐? , 이런 여잔 네가 처음이야.’
그리고 우리는 공유된 미디어에서 공통된 사랑을 배웁니다. 저는 동시대에 같은 미디어를 보고 자란 TV 세대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된 사랑 언어는 그 나이대의 언어를 단숨에 바꿔버릴 수 있다는 걸 믿습니다. 그리고 입맛이 세분된 우린 취향에 따라 미디어를 선택하게 됩니다.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책, 포르노 등 각자 그곳에서 본 사랑으로 언어를 키워가죠. (미디어는 가장 쉬운 사랑 킹몬학습지라 할 수 있죠)
그리고 만납니다. 실제 인간을요.
사랑하는 상대의 언어와 형태가 너무나 아리송합니다. 내가 여태까지 배우고 모방했던 사랑과 얼마나 틀리고 달랐나요? 우리의 사랑은 철저히 사교육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언어가 있나요? 부재 : Lucky girl vs love sick girl>
어쩌면 당신은 당신과 같은 언어를 쓰는, 꼭 맞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랑이 평생 이어질 수도 있어요. 혹은 이미 건강한 사랑을 하는 법을 잘 배워야 해나가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렇담 당신은 럭키 걸. (계속 그렇게 사랑하며 사시길 굿럭)
생각해 보면 저는 저의 언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핍은 있었고요, 어딘가 서툴게 모방한 사랑만이 있었습니다. (모방한 언어가 정답이라 믿었어요. 다들 그렇게 하던데요?)그래서 저는 눈치를 많이 봤습니다. 제 언어에 확신이 없으면 그렇게 돼요. 틀리면 달랐다고 했고, 싫어도 경험이라 했습니다. 저의 입은 Yes를 위한 입이었어요. 앵무새처럼 긍정의 언어만 내뱉었지요. 하지만 몸은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어딘가 불편하고 불쾌하고 열이 올랐어요. 싫은 걸 좋다고 연기하는 법만 느는 연애만 했어요. 그러다… 네 화병이 돌았습니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갈 수 있어.’야 착한 여자를 맡았어요. 그리고 진짜 천국에 갈 뻔했습니다. 답답해 죽어 버릴 것만 같았어요. 사랑에서만큼은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거든요.
말을 잃은 인어공주처럼 사랑을 했어요. (그때 인어공주는 진정 행복했을까요?)
결국 나의 언어로 사랑을 말한다는 건 주체적인 사랑을 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네요.
<선택의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나요?>
같은 실수가 반복됩니다. 누굴 만나든 같은 상처가 똑같이 아프지요. 왜 상대는 내 상처를 모르는 척할까요? 왜 나를 치유해 주지 못할까요? 왜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할까요? 라는 쉬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분명 똑같은데 상대는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요. (이쯤 되면 한결같은 내가 이상하냐고 생각하셔야 해요)
사랑할 때는 사랑을 잘 배우지 못합니다. (정신없이 도파민을 채우기에 바쁘니까요) 그리고 사랑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전체적인 형태를 보기가 힘들지요. 배움을 주로 그 끝에 왔어요. 도파민이 끝나는 순간, 또는 헤어진 순간. 여기서 우리에게 선택지가 옵니다. 상대를 바꿔 계속 같은 사랑을 할지, 더 이상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모방이 아닌 나만의 언어를 습득할지…! (저는 이걸 이제 상대만 바꿔 서른 마흔다섯 번 반복했답니다. 농담ㅋ)
<how deep is your love>
분명 창작의 어머니는 모방이라는 말을 했지요.
우리는 모방 이후 창작이랑 잉태를 해야 했는데, 계속 모방만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제 언어라고 착각하고요. 그 결과로 몇 단어밖에 뱉지 못하는 사랑앵무가 되어 단편적이고 납작한 사랑을 했어요.
저는 더 이상 물거품이 되는 사랑이 아닌 ‘happily ever after’ 하기 위해 저의 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여기서부턴 상대는 아직 중요한 것이 아녜요. 흔들리지 않는 내 언어를 만들고 나의 가능성을 유연하게 넓히는 것이 우선이지요.
나의 세상에 대한 애정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를 기꺼이 바꿀 유연함이 있다면, 언어를 강요당하지 않는 강인함과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함께 노력하는 세상이 오길…)
당부의 말씀
의식하지 않으면 사랑은 녹이 습니다. 분명히요. 그리고 거칠고 녹이 슨 사랑은 언젠가 누군가를 분명 해칠 거예요.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고, 남이 될 수도 있지요. 세상이 달라짐에 따라 사랑의 언어로 매일 새롭게 변화해요. 지금의 언어는 분명 미래엔 더 나은 사랑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성장하니까요. 사랑의 형태가 유연하게 바뀌는 걸 의연하게 지켜볼 수 있을 때가 오면 그게 진짜 사랑을 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요?
동화 속 인어공주 말고 현실을 살아봅시다.
*본 글은 위 세 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에디터 '미림'이 발행한 콘텐츠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3X3 매거진과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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