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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사랑
불안은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던 감정이었다. 항상 집에 혼자 있으면 지구에서 나 혼자 덜렁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압도되는 듯한 느낌 안에서 무기력함과 불안함을 느꼈다. 다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커보니 불안 장애의 증상 중 하나였고, 지금은 나아졌다. 보통 시험 전, 발표하기 전, 낯선 사람을 만나기 전 느끼는 불안의 감정은 나한테는 항상 내재되어 있는 감정이다. 특히, 연애할 때 그 불안한 감정이 사랑과 공존한다. 심지어 회피형인 사람들한테 끌리는 미친 도파민 중독자이다. 상대방이 회피를 하는 순간 내 감정들은 불안으로 다 치우쳐져 있고, 내 사랑은 더 커진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내 불안과 사랑을 뒤섞여서 더 불안한 사랑을 낳는다. 어릴 때 (21살 때) 그 불안이 집착으로 이어가서 내가 풀릴 때까지 연락하고 더 보기 누를 정도로 장문 카톡을 보내고 다 차단당해서 블로그 댓글 남기고 이메일도 보냈었던 적이 있다. (학교 CC라 팀플에서 만났을 때 얻은 이메일 주소) 그 당시에는 그게 내가 상대방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다. 몇 번의 연애 경험 끝에 지금은 헤어진 지 2달째인데, 그동안 생각해 보니 모든 게 다 나의 불안 때문이었다. 상대방을 사랑해서 사귄 것도 당연히 맞지만 연애하면서 내가 더 남자같이 굴었던 점 (1-2주에 한 번씩 만나고 싶어 했음, 표현 잘 못했음, 내 말 때문에 상처받은 감정보다 내 말을 납득시키는 것에 더 집중했음 등등) 이 내 불안을 잘 조절하지 못한 방어기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과 사랑
내가 극도로 불안함을 느끼는 두 가지가 있다. 일과 사랑에 관련한 것들은 나에게 예민하고, 깊숙이 다가온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과 이미 지나간 실수를 몇백 번씩 곱씹어보고 스스로 불안의 상태에 가둔다. 각각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만 일과 사랑이 부딪치는 순간 더 최악이 된다. 난 일이 사랑보다 우선인 사람이고, 항상 반대인 사람만 만나왔다. 만약 상대방이 나보다 일이 우선이라면 서운하겠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이성적으로는 이해를 할 수 있다.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막상 나 같은 사람 만나면 나를 기다리게 하면 불안해서 미칠지도) 단순히 직장 다니는 게 아니라, 대학교 때도 항상 일 벌이는 성격이라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소모임, 연합동아리, 외주, 취업준비를 동시에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내가 원해서 하는 일들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일 순위였고 내 능력을 기를 수 있고 도움이 되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연애는 항상 후순위였다. 연애가 일 순위인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다리게 하는 역할이었다. (나와 반대였다. 내향형.. ) 내가 항상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 자신이 내 일보다 뒷전이라는 것이 관계에서 항상 이슈였다. 싸움의 시작이었고, 감정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나야 일(친구, 동아리, 외주, 등등등)이야 라는 감정적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사실 난 일이었다. 내 인생의 목표가 연애가 아니었고, 10년 지기 친구들보다 몇 개월 안 연인을 우선순위로 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전애인들한테 들었었던 말이 있는데, 나랑 연애하면 외롭다고 했었다. 나도 연애해도 외로운데.. 내가 외로운 사람이니까 외로움이 전파되나 싶기도 하고.. 자책은 아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한) 연애를 해오면서 깨달은 점은 있다. 나는 스스로 일이 일 순위 되는 상황으로부터 자존감을 얻었던 것 같다. 사랑보다 일하는 게 좋다는 나한테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안과 사랑, 일과 사랑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무엇을 인식하느냐인 것 같다. 불안을 없애고 안정적인 사랑을 할 순 없지만 내 불안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인다. 일과 사랑의 관계에서 양자택일하는 상황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서로 맞춰갈 수 있는 영역을 찾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연애할 생각이 있다면)
중독과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연애를 계속 하게 될까. 연애하는 동안 불안하든 안정적이든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아서인 듯하다. 심하게 싸운 뒤 달콤한 화해에서 나오는 (진짜 사랑이라고 믿는) 사랑과 도파민 때문이 아닐까.. 연애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좋진 않지만 연애보다 일을 선택하는 내가 좋은 듯하다. 강제성이 생기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 같다. 연애가 강제는 절대 아니고, 쌍뱡향적인 관계인 점을 알지만, 연애라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하는 선택이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산다거나,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한다. 상대방에게 생산적인 삶을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한테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연애가 끝나면 다시 리셋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연애가 다시 시작하면 열심히 살 준비를 한다. 타인에 의한 내 연애방식은 상대방이 누군지에 따라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헤어질 때마다 큰 타격감을 받는다. 여러 번의 타격감 뒤에야 나는 연애를 쉴 생각을 드디어 갖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연애를 (구체적으로 있진 않다) 하려면 내가 하는 연애방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시간이 부족했던 상태에서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만들었다.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지만 인식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지금 연애할 생각이 없다는 상태를 제발 유지하고 싶다.
팀원들이 주는 해결방안
미림: 나를 놓은 상태에서 누군갈 만나보기 (이걸 좋아하네?)
오니기리: 불안의 순환 끊어보기, 본인의 감정상태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두루미: 일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 덤덤충 만나보기
도마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정말 제대로 가져보기 좀 오랫동안!
*본 글은 위 세 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에디터 '고추냉이'이 발행한 콘텐츠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3X3 매거진과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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